'아이의 눈높이에서 재해석한 현실의 부조리' 정도로 정리하면 될 거 같다. 아이가 그린 그림에서 볼 법한 아기자기한 순수함이 크레딧부터 영화 곳곳을 감싸고 있다. 자본주의, 파시즘, 전쟁, 매춘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조악하고 우스꽝스러우면서 아름답다. 모든 아이는 예술가라는 피카소 경구의 실천에 해당하는, 아이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아 예술 작품이 된 세상을 보여주려는 작품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모든 아이가 예술가라고 한다면 반대로 모든 예술가는 어린 아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즉, 영화 감독이 아이가 주인공인 서사를 다룰 때 그 성인은 진정으로 어린 아이의 시선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이 영화를 보고 떠오르는 , , 같은 작품들 모두 꿈을 성장의 통과 의례로 사용하는 영화들이다. 7개의 문을 통과하라는 직접적인 지시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노골적인 통과의례 서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통과한 결과가 뭐냐, 하는 데서 앞서 언급한 작품들과 이 영화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환상적인 모험 끝 현실로 돌아온 소녀가 가정에 다시 어우러지는 대신 이 영화의 성인이 된 소녀는 꿈에서 나가지 못한다.
어른이 된 후에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경고/저주가 꿈을 꾼 후에는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이었나. 마지막 문을 통과한 그녀는 상징적 죽음과 함께 손을 잡고 저 멀리 해가 지는 지평선을 향해 걸어가고 영화는 서서히 그들을 놓아준다. 소녀는 그렇게 죽은걸까. 죽었더라도 꿈속의 죽음이니 슬퍼할 필요 없는 것일까.
피카소 경구의 뒷부분을 이으면 모든 아이는 예술가지만 중요한 건 어른이 되고서까지 어떻게 그 상태를 보존하냐는 것이다. 어른이 된 예술가는 아이이고 싶지만 아이일 수 없는 존재다. 영화 서사는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어주지만 정작 그 영화를 만드는 예술가는 영화 만들기를 통해 아이 되기를 꿈꾼다. 그래서 마지막의 상징적 죽음은 그 불가능한 소망을 고백하는 예술적 결말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 감독은 성장영화를 빌미로 삼아 아이에 완전히 빙의하는, 꿈을 꾸었다 다시 현실의 아이로 돌아오는 영화들을 가식적이라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면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소녀에게, 또 소녀를 그려보려는 감독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성장을 가능케 하는 환상의 가능성과 그 환상을 만드는 자의 역성장의 불가능성. 그 미묘한 모순을 고백하는 상징. 마지막 쇼트는 암시고 상징이고 간접이어서 슬프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재해석한 현실의 부조리' 정도로 정리하면 될 거 같다. 아이가 그린 그림에서 볼 법한 아기자기한 순수함이 크레딧부터 영화 곳곳을 감싸고 있다. 자본주의, 파시즘, 전쟁, 매춘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조악하고 우스꽝스러우면서 아름답다. 모든 아이는 예술가라는 피카소 경구의 실천에 해당하는, 아이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아 예술 작품이 된 세상을 보여주려는 작품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모든 아이가 예술가라고 한다면 반대로 모든 예술가는 어린 아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즉, 영화 감독이 아이가 주인공인 서사를 다룰 때 그 성인은 진정으로 어린 아이의 시선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이 영화를 보고 떠오르는 , , 같은 작품들 모두 꿈을 성장의 통과 의례로 사용하는 영화들이다. 7개의 문을 통과하라는 직접적인 지시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노골적인 통과의례 서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통과한 결과가 뭐냐, 하는 데서 앞서 언급한 작품들과 이 영화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환상적인 모험 끝 현실로 돌아온 소녀가 가정에 다시 어우러지는 대신 이 영화의 성인이 된 소녀는 꿈에서 나가지 못한다.
어른이 된 후에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경고/저주가 꿈을 꾼 후에는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이었나. 마지막 문을 통과한 그녀는 상징적 죽음과 함께 손을 잡고 저 멀리 해가 지는 지평선을 향해 걸어가고 영화는 서서히 그들을 놓아준다. 소녀는 그렇게 죽은걸까. 죽었더라도 꿈속의 죽음이니 슬퍼할 필요 없는 것일까.
피카소 경구의 뒷부분을 이으면 모든 아이는 예술가지만 중요한 건 어른이 되고서까지 어떻게 그 상태를 보존하냐는 것이다. 어른이 된 예술가는 아이이고 싶지만 아이일 수 없는 존재다. 영화 서사는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어주지만 정작 그 영화를 만드는 예술가는 영화 만들기를 통해 아이 되기를 꿈꾼다. 그래서 마지막의 상징적 죽음은 그 불가능한 소망을 고백하는 예술적 결말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 감독은 성장영화를 빌미로 삼아 아이에 완전히 빙의하는, 꿈을 꾸었다 다시 현실의 아이로 돌아오는 영화들을 가식적이라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면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소녀에게, 또 소녀를 그려보려는 감독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성장을 가능케 하는 환상의 가능성과 그 환상을 만드는 자의 역성장의 불가능성. 그 미묘한 모순을 고백하는 상징. 마지막 쇼트는 암시고 상징이고 간접이어서 슬프다.